과니의 문학리뷰 & 창작 일지
신의 형상 (2021) 본문
한달 전, 학생들에게 과제를 줬는데 나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누가 보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과제만 내주는 사람인 줄 알 것 같다. 칠판에다가 '신의 형상'을 쓴 뒤 가장 가까운 것을 가져오고 그 이유를 서술하라고 했을 뿐이다. 가져올 수가 없는 거라면 사진이나 이미지로라도 제출하라고 했는데, 아니 뭐 조형해오라는 소리도 안했다. 조금 억울한 심정이다.
수학처럼 '논리적 정의'가 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상대적 정답'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학생들에게 원하는 정답 같은게 있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 '뻔한 얘기를 하지 않는가'가 중요할 뿐이었다.
당신들에게도 이 말을 전한다. 신의 형상을 논해보기로 하자. 일단은 모두 인간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 로마신화, 불교, 기독교, 힌두교, 북유럽신화, 중국 신화, 이집트 신화 등. 중국의 '여와'는 뱀의 꼬리를 하고 있으나 얼굴은 인간이니, 결국 인간 친화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아누비스는 개의 얼굴을 하곤 있지만 2족보행이잖나.
그러나 '신'이라는 것의 속성을 따져 보자면 그들의 형상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가냘픈 생물체인가. 얼마나 약점이 많은 생명체인가.
천천히 따져보자면, 일단 2족보행부터가 문제다.
이 얼마나 실속 없는 진화인가. 서서 걷게 된 덕분에 우리는 뼈로 보호되어있지 않은 내장기관을 외부로 대놓고 보여주게 된다. 다시 말해 뱃가죽에 칼 한번 잘못 쑤시면 그 길로 죽을 수 있다는 소리다. 거기다가 2족보행은 4족보행 동물들은 겪지 않는 '디스크'를 유발한다. 하중으로 인해서 뼈 사이의 디스크가 튀어나오게 되는 것은 결국 척추를 올곧게 세로로 펴고 있는 생물이 아닌가.
그럼 (신은)4족보행이냐고? 그것 또한 그럴 리가 없다. 지극히 종족 우월주의로 말하자면 '4족보행'을 하는 애들이 인간보다 우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 4+n족이냐고? '다리'는 이동을 위해 발달된 신체 부위다. 다시 말하자면 '신'에게 다리는 불필요하다. 흔히들 대하사극 드라마에서 말하는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처럼, 어디에도 존재해야 신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물며 귀신(鬼神)을 묘사할 때도 다리를 묘사하지 않을 때가 잦으니까.
두 번째로 호흡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숨을 쉬지 못하는 이상 인간은 1분 내외로 죽는다. 숨을 아무리 많이 참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10분을 넘어갈 수가 없다. 대기에 존재하는 '산소'가 신에게 필요할까? 신에게는 '코' 같은게 없지 않을까. 애초에 호흡기관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디 불완전하게 '들숨'과 '날숨'을 필요로 할까. (여기서부터 인간은 신을 본따 만들어졌다는 말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코'를 말했으니 '눈'과 '입'도 말해야겠다. '눈'도 불필요하다. 위에서 말한 '다리'의 필요성처럼,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어디든 볼 수 있다는 말이 될 테니.
음식을 씹고 소화해야 하는 '입' 또한 불필요하다. 영양소를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큼 불편한 것은 없지 않은가. 무언가 발화를 할 바에는 텔레파시로 말하는게 훨씬 효과적일텐데?
이즈음 되면 이미 다들 눈치를 챘겠다만, 내가 말하는 '신'이란 '생물'의 형상을 띌 수가 없다. 애초에 필연적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생물 중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약이다.
그럼 형태를 정리해보자. 굉장히 기괴하겠지만, '신'은 다리가 없다. 눈코입, 호흡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먹기 위해 채집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일도 없을테니 팔도 없다. '절대적 존재'인 이상 생물이 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덜 아마 눈 하나(비유적 표현이다) 깜짝 안 할 것이다. 칼에 찔려서 다칠 만한 내부의 무언가도 없을 것이다. 굉장히 단단하거나, 아니면 아주 거대할 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는 이로 인해 생각보다 끔찍한 혼종을 하나 만들어냈다. 대중의 공감대는 형성해야 하니 한없이 인간적이되, 그 내구성이나 파워 만큼은 어떤 인류도 따라오지 못할 캐릭터. 슈퍼맨이다.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입은 챠밍챠밍한 슈퍼맨. 최근에 영화로 나온 것을 보니 총알이 눈에 맞아도 총알이 찌그러지지 눈의 각막은 멀쩡했다. 먹지 않아도 살 것이고, 떡을 먹다 기도에 걸린 덜 죽지 않을 것이다. 다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날아다니고, 인류의 적이라고 할 만한 악당들을 무찌른다. 그럼 그는 신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애초에 그는 '슈퍼 히어로'라고 불리지 신이라고 불리진 않으니까.
'형상'을 따졌으니 이제 존재론적인 면을 따질 때가 왔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지극히 인간적인 말이지만 잠시 신에게 적용시켜보자. 신이 자신을 알려고 한다. 인간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십이지신 중에서도 닮은 구석이 없다. 애초에 생물체가 자기와 비슷한지 모르겠다. 애착이 갈까?
공통분모라도 있으면 '어 너두? 야 나두!'를 외치며 친밀감이라도 드러낼텐데, 이건 거의 마스크와 갈매기다. 뭔 소린지 모를 정도로 무관계하단 소리다. 그러니 (종교인들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말일지 몰라도) 신은 인간을 보살피지 않는다. 아니, 혹여 보살피더라도 특별취급 하진 않는다.
신이라는 존재는 '감정이 없을 것'이다. 희노애락애오욕. 혹은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이 존재할까. 인간의 반의 반이라도 닮았더라면 가졌을지 모른다. 그런데 마스크랑 갈매기라니까? 혹은 오늘 사먹은 커피와 저번주에 깎았던 엄지발톱 정도의 관계다. 만에 하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적 존재에 가까운 신이 생물인 우리와 비슷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슈퍼맨이 신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즈음에서 제우스를 생각했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영웅에 의해 신이 죽기도 하니 우리가 말하는 '신'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보인다. 다만 그리스로마신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 제우스와 같은 캐릭터가 만들어진다면 아마 신이 아닌 바람둥이 썬더맨 하나가 만들어졌으리라 예감한다)
이즈음 되면 신이 '무생물'인지에 대한 생각도 들게 된다. 하지만 무생물로 보기도 어렵다. '신'이라는 워딩이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단어인 이상, 신은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어딘가에 있어야 어울린다. 아마 신은 움직이긴 움직일 것이다. 물론 인간의 뜻과는 무관하게.
애초에 나는 학생들에게 신의 형상과 가장 비슷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으니, 전제조건부터 '신은 존재한다'를 염두에 두긴 했다. 학생들에게 인간의 외형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들과, 신의 절대적 성격이 맞물릴 이유가 없다는 소리를 했기에, 올해에도 별의별 것들을 들고 올 게 분명했다.
그 있잖은가. 질량이 없는 물질을 가져오면 A+를 주겠다고 하자 사랑을 말하는 학생처럼.
나 또한 작년에는 형광 분홍색의 하트 이미지를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온 학생의 보고서를 받을 수 있었다. 올해는 무엇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신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인간을 닮지 않았다.
신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은 특별한 애정을 줄 대상 같은 건 딱히 없을 것이다.
신은 천지를 창조하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신이 어디서 그런 능력을 펼칠 지는 모르는 일이다.
신은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생물은 아닐 것이다.
이게 아마 인류가 ('신'이라는 종교적 워딩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이성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최선의 신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쁜 선생같다.
김 교수님은 칠판에다가 '신의 형상'을 써놓고서는, 가장 가까운 대상을 가져오던지, 이미지로 따오고서는 그 이유를 써오라고 했다. 기간은 이주일이었다.
굉장히 인자한 미소를 짓는 척했는데 저 양반 성깔 까탈스러운 건 선배들에게 예저녁부터 들어온지라,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어쨌든 인성에 문제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리고 수소문 한 끝에 가장 대중적인 답안이라고 치면
만다라, 卍, 십자가, 조명(빛), 사랑, 고양이, 술, 소리, 물 등등이었다. 대체 고양이는 왜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에 나 학교도 못가게 만들 뻔한 귀여운 고양이를 생각하면 고양이가 지구를 구하는 것 같긴 했다.
이주일동안 모든 종교학 서적을 뒤질 의지력따위는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주일동안 전국의 종교문화학과 교수님들에게 메일을 보낼 배짱따위도 없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하다가
오늘 나와 지구를 구한 고양이를 떠오른 뒤
그 다음날, 김 교수님에게 집에 있는 48000원짜리 지구본을 드리며 채점이 끝나면 돌려달라고 말했다.
왜 A+을 받았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이 모든 것은 고양이의 덕분이라고 하자.
(오프 더 레코드)
나는 무교다. 다만 웃긴 건 집안은 불교고, 군대에서는 몽쉘을 받기 위해 성당을 갔다가 세례명을 받았고, 학교는 대순진리회 재단에서 지은 대학교였다. 누나는 이화여고(기독교)를 나왔고, 집은 잘 가다가 한번씩 사이비 교도들이 벨을 누르고서는 보시(or선행or기부)를 해달라고 했다.
굉장히 복잡스럽다만, 굳이 내 종교를 말하자면 FSM(FLYING SPAGHETTY MONSTER)(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다. 파스타를 사랑하니까.
언젠가 누나는 "만약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그건 '구체'에 가까운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두 다리 건너 들은소리니 출처도 불분명하다.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기를.) 그냥 그 생각을 하고 있다가
결국 종교적으로 말하는 '신'의 이미지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신'의 논리적 모순을 모두 합쳐버린다면 지구밖에 나올 게 없지 않을까 싶었다.
종교문화학을 공부했었다면 굉장히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얘기했을 것이었다만, 배운 게 없으니 짧은 콩트로 놔둔다.
언젠가 한번 더 업글해서 재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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