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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니의 문학리뷰 & 창작 일지

달이 수면을 꼬집어 올리면 썰물은 시작되었다 소금기 가득한 아흐레의 밤을 저며내어 두 장의 편지와 제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들을 흘려보낸 누나를 처음 볼 때는 망부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구멍이 무색하게도 전분물마냥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을 검은 갯벌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밤이 철지난 안부를 자처하고 있다 현아 가루는 천천히 뿌려야 한다 바람을 등지고 서서 울어버리면 아무 것도 놓질 못하니 무던히 바라보거라 입술을 물고 온몸으로 울던 소년과 아픔을 소리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 습기에 매몰될까봐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갯벌은 새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고 바다에서 날고 있는 것들은 너무 깊어서 보내고 나면 돌아오기를 바랄 수 없는데 수평선에 떠 있는 것만이 보내고 나서도 돌..

얼마 전 나는 내 무기력을 얘기하면서 시쓰기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무기력이 올 때면 (Feat. 시쓰기가 어려운 이유) 내 시 담당교수님이 말한 것들 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몇 가지 정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는 무언가 결핍되어있어야지 쓴다"라는 것이었다. 산에 올라가서 일출이 올라오는 풍경을 보 alldaynight-sensibility.tistory.com 일단 못 박고 시작하는데, '시'와 '감성글'은 다르다. '시'와 '감성글'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상당할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무턱대고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하는 사람들에 대해 굉장한 불쾌함을 느낀다. 이건 뭐랄까, 미대 전공생 앞에서 꽃 그림 하나 그려놓고 자기를 '화가'라고 지칭하거나, 진짜..

시작하기에 앞서, 공백의 정의부터 알고 가자. 1-종이나 책 따위에서 글씨나 그림이 없는 빈 곳. 2-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음. 3-특정한 활동이나 업적이 없이 비어 있음. 네이버에서 사전적 정의를 찾으면서 나는 상당히 흥미로움을 느꼈는데,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음'이라는 중립적인 두 번째 뜻풀이의 앞뒤로 긍정과 부정이 따라오는 듯해서였다. 종이나 책 따위에서 글씨나 그림이 없는 빈 곳은 어떠한 부정적인 느낌도 들지 않는다. 작은 메모를 할 수 있는 빈 공간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음으로써 '여백의 미(美)'를 더하는 가치 충만한 공간의 공백이다. 이에 반해 특정한 활동이나 업적이 없이 비어 있음은 왠지 모르게 쓸쓸한 공백이다. 가수들의 기나긴 공백 기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떠한 존재에게 이렇다..

(개인적으로 시식, 혹은 시음식이라고 부른다. 시인이 이 시에서(혹은 이 시집에서) 어떠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지 기록하기 위한 카테고리 대부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 '창비' 시집임을 밝힌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존재론'에 대한 물음은 피할 수 없다. 아니 뭐, 피할 수 없다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다만, 답을 찾을 수 있다고도 못하겠다. 흔히들 말하는 '중2병'의 감성으로 비장하게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봐봤자 답은 나오지 않으며, 종교적인 관점을 참고하려 해도 난감하다. 거울에 비치는 나도 모르는데 교회는 보이지도 않는 신의 존재를 믿으라고 하고 있고, 불교에 조예가 있는 아버지에게 물어보자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답이 들려왔다. 덕분에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