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니의 문학리뷰 & 창작 일지
12.25 크리스마스, 나와 당신의 메리 블루 본문
분주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바깥은 겨울이지 크리스마스가 아닌 듯하다. 한낮, 길가, 사람들. 모두 여느때와 다름 없이 평범하다. 산타는 SNS로 옮겨간 듯하다. 빨간 물결이 인스타그램에서만 보이고 있으니까.
기념일에 대해서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의식하고 싶지 않지만 강제적으로 의식하게 되는 것. 내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언젠가 다시 또 돌아오게 되는 것이 기념일이라서. 슬픈 과거가 있었다거나,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념일'이라고 하면,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평소와 다름없고 싶은 나의 기분을 찔러서다. 크리스마스. 이게 뭐가 그리 중하다고. 코로나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도 않는데. 챙기지 않기 시작한게 언젠데.
언젠가부터 예수에게도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한 적은 없고, 나는 춥디 추운 현관문을 열어놓고서는 산타가 언제올지 궁금해서 계속 거실 앞쪽을 기웃거리는 꼬마였으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보단, '메리 고 라운드'파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늘도 각자의 사무실로 출근을 하셨다. 엄마는 할 게 없으면 원고 작성하는걸 사무실에서 하라고 불렀는데,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오늘은 집에 있겠다고 답했다. '네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바깥으로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가, '하지만 여기서 움직이지 못한다면 바깥에서도 결국 움직이지 못하겠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주먹에 힘주면서 이불에서 벗어났다. 엄빠가 없는 집은 조금 과하게 넓었지만 나의 사무실이 되었다. 참고할만한 책들이 옆에 있고, 마실 생수가 있으니 충분했다.
일자리를 잃어버리다시피 한 게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12월, 출근을 6번인가 했다. 밤 9시에 영업이 끝나니 이번 얼급은 30만원도 안 될 느낌이다. 요식업계는 전멸에 가까워졌고, 아주 가끔씩 새벽 알바 공고만 올라왔다. 알바몬 대부분을 쿠팡이 차지하고 있었다. 쿠팡이 아니면 로젠. 로젠이 아니면 마켓컬리. 마켓컬리가 아니면... 이런식이다. 나도 이 정도인데, 내 사장은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번달 매출이 평소 매출의 4분지 1이었으니,
코로나 블루가 유행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도 못 만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데 일도 못하다보니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증을 통틀어서 지칭한다고 한다. 오늘 나는 코로나X크리스마스 콜라보 블루다. 자기계발 동영상에서 나왔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면, 아마 움직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들이 안되는 이유는 딱 하나야. 여러분들은 안 변해. 원래 인간은 안변해."
어떻게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는 말만 합니까 선생님. 제 상태가 바로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의 상태입니다. 막상 살 의지는 없으면서 뭔가를 소비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해요. 그리고 이런 상태가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가 않아요. 일을 잃어버리고 나니까 더더욱이요. 영상에서 들었던 이 말이 지워지지를 않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너는, 지금 그래서 작년과 비교해서 얼마나 변해있니." 이 의문이 머릿속에서 들고나자, 나는 내가 나에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소크라테스는 명언을 너무 짧게 한 거 아니냐. 나 자신에 대해선 얼마든지 알고 있으니까, 이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주지.
문예창작학과생으로 지낼 동안 배워왔던 것중에 하나는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본인의 쌓인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활동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내가 내의 블루에 대해서 이렇게나마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느껴야 할까. 사무실에 혼자 있을 엄마와, 어딘가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던 아빠. 오늘은 5분 대기조 출근 없이 가족 모두 모여서, 편하게 앉아있고 싶다.
그 전까지, 열심히 나도 움직여야지.
필명 '과니(Gwany)'
오피니언 타임스 칼럼니스트
[원룸-감성과의 동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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