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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과생들이 등단하지 못하는 5가지 이유

과니(Gwany) 2021. 1. 2. 11:30

한 번쯤은 건드려봐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만 오랫동안 말을 아꼈다. 앞으로 문창과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이 있을 것이고, 작가 등단을 꿈꾸는 대학생들이 있을 것이며, 어찌 되었건 간에 '예술계'에 들어가 있는 학과인 이상 프라이드가 높은 학생들은 정말로 높기에, 내 후배들까지 포함해서 상처 주고 싶지 않으니까. 언제 즈음에 건드려볼까 하다가 새해가 된 기념으로 드디어 말을 꺼낸다. '새해도 밝았고 서로 복 받으라는 소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왜 초를 치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지금이 적기인 듯하다. 새해니까. 딱 따끈따끈하게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들리고 있고, 아마 희비가 엇갈릴 테니까. 그리고 응모는 안 했어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은 아이들은 지금쯤 상당히 들떠있을 테니까.

 

학과 취업률 중 가장 극악인 문창과에 글을 쓰고싶단 생각만으로 지원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이 글을 등단을 꿈꾸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바친다.

 

 

 

1. 실질적 독서량이 현저히 모자른 경우

 

경험해본 사람은 알지만 중학생이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모르는 게 있는데, 독서량이 어느 정도 있는 학생은 고등학교 언어영역 모의고사의 등급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못해도 3등급이 나오고, 어느 정도 탄탄하면 2등급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에게 책 좀 그만 읽으라고 잔소리 들었던 내 누나는 별다른 공부 없이 1등급이었다. 다시 말해서 '독서량'과 '글의 논지파악', '이해력', '논리적 사고', '독서 속도'는 비례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라는 기출문제집은 제대로 안 풀고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만 읽다가 언어영역이 2등급까지 올라간 동창도 본 적 있다.

 

이러한 시너지는 문창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언어영역에서 끝발 좀 날리거나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친구들이 들어오는 곳이니 위와는 조금 다른 양상일 뿐이다. 문창과에서 '문학 독서량'은 '상상력'과 비례한다. 아까는 여러 가지 있었는데 왜 달랑 하나냐고? 하나면 충분하다. '상상력'에 해당 학생의 집필 속도, 퇴고 속도, 입체적 인물 설정, 전개 밸런스 등이 달려있다. 다시 말하면 상상력이 부족할 시 집필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인물들은 평면적이게 되며, 집필에 체력을 다 쓰다 보니 기승전결의 밸런스를 맞추기 버거워지고, 퇴고는 더 느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서량과 관련된 문제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독서량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집이나 다른 곳에서는 본인이 책을 많이 읽은게 티 나니까. 부탁하건데 부심 좀 그만 부리고 책이나 읽어주길 바란다. 나보코프, 카프카, 디킨스 같은 사람들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성란, 윤고은, 황정은, 김영하, 손보미, 윤이형 등. 국내에서 인지도 높은 작가들만이라도 읽어달라.

 

"학교는 잘하는 데가 아니야. 못하는 데지." 배우 박신양의 말이다. 적어도 '문청'이라는 단어를 본인을 꾸미는 수식어구로 사용하고 싶다면 당장에 학부생들이 해야 하는 건 '깨지고, 무너지고, 흔들리고, 절망하고, 부서지는 것'이다. 본인이 넘어서야 하는 벽을 실감해라. 그리고 좌절했다면 돌아서지 말고, 다시 전율하길 바란다. 적어도 문창과라면, '사건'을 맞이한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는 순간이 가장 카타르시스 넘치는 순간이라는 것을 시나리오 수업에서 배울 것이다.

 

 

 

애머슨 - "보기 드문 지식인을 만났을 때는, 그가 무슨 책을 읽는가를 물어보아야한다." 적어도 글을 쓰려는 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면, 정확히 본인 수준만큼의 글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는 당연한 소리지만, 상당히 치명적이고 쓰린 소리다.

 

 

 

2. 필사량 or 작품 세부 분석량이 적은 경우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글은 모두 안정되어있다. 흐름을 잃지 않고, 분위기를 갑자기 깨는 방해 요소가 없다. 묘사와 설명의 비율이 적절하고, 기승전결 구성이 탄탄하다. 필사는 그런 작가와 닮아가는 과정이다. 작가의 문장, 작가의 호흡, 작가의 기승전결, 밸런스, 스타일 등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몸에 각인시킨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100번 필사한 사람도 있고, 장르소설 작가들 중에서도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모방'의 중요성은 필수적이다. 

 

물론 필사를 안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다면 필사에 준하는 다른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형광펜을 챙겨놓고 작품의 '묘사'와 '설명'을 분리해가면서 보거나, 좋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따로 받아 적은 다음 단어를 바꾸어가면서 자신의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을 수반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승전결을 분리해서 각 부분이 몇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는지 보고, 문장의 길이를 줄로 쳐가면서 장단을 파악하는 것도 좋다.

 

솔직히 어떤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좋다', '멋있다', '이 부분이 압권이다', '이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다', '이러한 주제를 두고 썼는데 감명깊었다' 등등의 감상평은 문창과가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동아리에서 '이 작품은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좋았어요'라고 대답하는 애들을 가장 싫어했다. 시계공은 남이 만든 시계라도 자기가 분해, 해체할 수 있다. 문창과 생이 남의 작품을 세부적으로 따져보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조금 글을 잘 쓰는 독자로 남는다.

 

 

 

3. 본인의 고독(孤獨)을 관리 못한 경우

 

단편소설을 써본다고 가정하자. 신춘문예 같은 데에 낼 만한 퀄리티로. 첫 번째로 주제를 찾는다. 본인이 뭘 말하고 싶은건지 알아야 글을 쓰니까. 두 번째로 그 주제에 부합하는 인물, 사건, 배경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쓴다. 쉽게 보이는가. 나는 아직도 여러 '작법 기교'들보다 이 기초적인 작업들이 신음소리 나올 정도로 힘들다.

 

 

"소설 창작이란 첫 번째로 어려우며, 두 번째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세 번째로 외로운 작업이다." - 이신조

 

 

인물이 입체적이 되려면 배우가 감정이입을 하는 것마냥 설정해야 하고, 한번 인물이 입체성을 띄게 되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인물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내 손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인물이 활동할 만한 배경에도 상당한 변동이 생기고, 사건에는 신경 쓰기도 힘들어진다. 단편 하나를 쓰는데 짧아도 한 달, 길면 반년을 소비하기도 한다. 다 쓰고 나면 바로 독자들에게 보여줄까? 퇴고가 시작된다. '다시'의 향연이다. 여기 '다시' 쓰세요. 여기 '다시' 매끄럽게. 여기 어색하니까 '다시'. 그리고 여기까지의 모든 작업들을 당신 혼자서 해야 한다. 글 누가 써주는 거 아니니까.

 

수백번의 '다시'들까지 끝내고 문학상에 공모를 했는데 만약에 당신이 떨어진다면? 아마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1년을 뒤돌아보자 몇 작품 쓰지도 못했고, 자기보다 어린애가 당선을 했고, 나이는 먹고 있고, 당선작을 보자 자기보다 훨씬 잘 썼고. 이제 슬슬 성과를 내야 할 것 같은데 나오는 게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문청들은 자기 자신이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모로 가도 재미있는 이야기만 쓰면 되는 장르문학과는 다르게 현대문학을 꿈꾸는 이들은 본인이 생각해온 나름대로의 깊은 철학을 작품에다가 넣은 것이기 때문에. 예선에도 올리지 못한 이름 석자와 함께, 본인의 세계가 부정당했다는 기분을 적어도 한 번쯤은 실감한다.

 

소설가 이신조는 말한다. "소설 창작이란 첫 번째로 어려우며, 두 번째로 시간이 오래걸리고, 세 번째로 외로운 작업이다." 다시 말하자면 창작은 지난한 고독의 집합체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작품을 냈다가 떨어져 버린 뒤, 더 이상 의욕을 내지 못하고 취업 전선으로 뛰어드는 이들을 몇몇 봐왔다.

 

 

 

 

4. 절대적인 시간 투자량이 적은 경우

 

10000시간동안 글쓰기를 연습한다고 쳐보자. 프로가 되고 싶으면 만 시간은 투자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곤 하니까. 만 시간은 1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연습해도 나오지 않는 분량이다. 하루 8시간 연습한다면 1250일이 필요한 시간이다. 가끔씩 이렇게 말하면 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대학 3년을 OT, MT, 답사, 여행, 주말, 연휴 모두 포기한 뒤 8시간씩 글 써도 다 채우지 못한다. 사람이 좀 쉬기도 해야 하니 하루 6시간으로 타협을 해볼까? 4년 반 나온다. 10000시간은 너무 센 것 같으니 10% 할인을 해서 9000시간이라고 쳐볼까. 그래도 4년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10000시간은 정말 프로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수능도 3년이란 시간을 준비하는 거니까. 다만 그 3년도 '어떻게 쓰는가'가 대학을 판가름했음을 기억하자. '딴짓'을 제외한 순수 공부시간이 결국 본인의 실력이다. 그리고 그게 부족하다면, 데뷔를 바라는 것은 복권과 비슷한 희망이다.

 

문창과 예고생들은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글을 쓰게 한다. 잘쓰던 못쓰던이 아니라 일단 쓰게 하는 것이다. '일단 쓰는 행위' 자체는 숨구멍과 여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숨을 쉬기 힘들다가도 계속해서 구멍을 뚫다 보면 자연스러운 호흡이 된다. '창작'이 어떤 일이기 이전에 자연스러운 활동이 되면 나중엔 시키지 않아도 시간 투자를 하게 된다. 학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에서 대작이랍시고 몇 년 동안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을 책으로 쓸 거면 10권은 넘어!"라는 소리를 하는 꼰대가 될 뿐이다.

 

 

 

연필과 노트 없이도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다. 적어도 습작생으로서 글을 쓰는게 더 편해졌음에도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본인의 게으름이 대부분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5. 아 운이 없나보지 ㅇㅅaㅇ 갠자네 갠자네

 

사실이다. 믿어줘라.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은 괜히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있다. 시로 등단할 거라 확신했던 선배 하나는 몇 년 동안 최종심에만 오르다가 내려와 버렸고, 한 달에 한 편식 다작을 하면서 명지대 대학원까지 들어갔었던 다른 선배는 장르소설가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가 하면 신춘문예를 보면 알겠지만 스무 살이 되자마자 등단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김영하 작가는 문창과가 아닌 연대 경영학과다. 굳이 문창과 아니어도 등단할 사람은 한다. 굳이 10000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데뷔할 사람은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정기적으로 원고료를 받고 칼럼을 내는 곳이 있는데 처음에 공모전으로 당선된 곳이었다. 그 공모전 작품 정확히 두시간 썼다. 퇴고는 한 5분 했나.

 

그러나 이것만 명심하도록 하자. 무엇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며, 사람은 결국 성실하다면 승패를 떠나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솔직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등단 못해도 상관 없다. 등단 못한다고 사람 죽는 거 아니잖아? 내게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통합해서 가르쳐줬던 선생님은 작가가 되지 않았을 뿐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기사나 칼럼, 감성 페이지를 운영하는 요리사가 되었으며, 영화감독이 된 선배, 출판사로 들어간 선·후배,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는 선배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학교에서 높은 과제량과 습작, 매년마다의 작품 분석을 소화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막 등단에 목까지 매달진 말고, 최선만 다해라.

이 세상은 운칠기삼이라서 노력이 아니라 운으로 되는 게 많은 곳이지만, 노력이 휘발되는 곳은 또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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