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니의 문학리뷰 & 창작 일지
논란의 작가들 - 작가와 작품은 하나로 봐야 하는가, 나눠 봐야 하는가 본문
장르문학 동아리를 운영할 때, 후배들에게 '인성 논란이 일어난 작가들의 작품은 읽어야 하는가, 읽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본래 "작가와 작품은 하나로 봐야 하는가, 나눠 봐야 하는가"가 본심이었다만, 그렇게 말해봤자 다들 반영론적 관점과 표현론적 관점 등의 형식적인 얘기만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운을 저렇게 뗀 의도 또한 있었다.
때는 2018년도였고, 한국 문단의 성추문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크고작은 예술계 미투사건이 벌어지는 중이었다(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후배들은 거의 전부가 "읽지 않겠다"고 답했다. 나 또한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 상태로 논의를 종결시키는 데에는 본 주제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작가의 이름 하나를 언급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문란한 사생활과 잦은 결혼, 이혼. 그리고 마초적인 성격으로 굉장히 폭력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럼 그의 작품도 읽지 않을거니?"
작가의 어떠한 비하인드 컷이나 오프 더 레코드는 잘 모르는게 보통이다만, 적어도 문학도들에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마초적 삶은 유명하다. 4명의 아내, 그리고 결혼 와중에도 여자들과 놀았다고 한 문란한 이력. 과시하는 걸 즐기고, 복싱이나 사냥 등을 즐겨 했으며, 남을 때리는 일도 잦았던 남자. 아마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문학계 미투 운동의 시발점을 그가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 외에도 회심하기 전까지 상당한 난봉꾼이었던 톨스토이, 술과 도박, 섹스에 빠져 살았던 부코스키 등이 있을 것이다.
젠더적 폭력이 아니라 다른 쪽의 인성 문제로 논란의 방향을 돌리면 해당되는 작가들은 아주 많아진다. 당장 교과서에서 '청산별곡'을 노래한 정철은 작품의 문학성을 배제한다면 탐관오리에 가까웠고, 이광수는 골수 친일파로 변절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쓴 아사 카터(대중들에겐 '포리스트 카터'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는 KKK단(백인우월주의적인 사이비종교이자 테러집단)의 간부였다.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작품의 개연성이 없고 학력 위조와 사기, 불륜등의 문제가 불거저 거진 매장당한 작가다. 이 외에도 많다만, 모두 언급하기가 힌들 정도다.
후배 한 명은 나의 질문을 듣고 나서 이렇게 답했다.
"그런 사실이 있다는 걸 모르고 읽을 수는 있겠지만, 알게 되고 나면 읽지 않을 것 같아요."
거의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토의는 끝났다만 나는 그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마 그 후배도 그랬을 것이리라.
다시 논해보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는 읽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읽던 말던 상당한 귀찮음을 요하게 된다. 내가 어떠한 작품을 읽기 전에, 그 작가에 대해서 검색하고, 알아보고, 주관적으로 이 문학 작품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내가 해당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청산별곡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다시 말해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이광수의 겁나 정없는 작품(『무정』)과 최남선의 처......ㄹ썩처......................ㄹ썩 거리는 파도(『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배우지 못했다가는 '근대문학작품'이라는 거대한 문학사의 한 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이것만 봐서는 "문학은 역사적,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면 작가의 인성적인 논란을 차치하고 나서라도 읽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잠깐만. 톨스토이는1898년 본인이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행동들을 반성하고선 회심하기 전에 쓴 모든 작품을 부정했다. 부정된 작품들 중에서는 안나 카레니나도 나온다. 본인의 문제적 과거를 독자들 뿐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부정해버리면 이 작품들은 읽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근데 서점에는 아직도 전설적인 명작으로 손꼽히면서 나오는 소설인데?
세계문학작가로 유명한 톨스토이가 저렇게 자신의 생에와 자신의 작품을 밀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작품은 역시 작가와 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성향과 생애를 반영하는 것이 작품인데, 둘을 분리해서 생각했다가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한국문단에서 미투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우스갯소리로 "외설적이던 작품을 쓰면서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주장하더니, 결국은 똑같은 놈들 아니냐"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는가. 문단에서 가장 많이 불거진 것은 시문학 계열이었기에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만, 그렇다면 영화계나 그외 문화계를 생각해봐도 편하겠다.
이제 그럼 역시 작가와 작품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걸까? 그런데 그렇게 했다가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어린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정신나간 양반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무려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단어의 유래인 『롤리타』를 만들어낸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는 모더니즘의 특징과 전통을 정확히 간파해 재현해냈다는 극찬을 받는 작가이며, 세 살 차이의 아내가 있던 곤충학자, 작가, 번역가였다. 본인이 덕질을 하는 분야가 확실하다보니 현실감각이 다소 떨어졌다는 소리는 있어도, 인성 문제나 추문에 휩쓸렸다는 얘기는 찾아보기도 드물다.
결국 질문은 돌고 돌아서 다시 원상태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작가와 작품은 하나로 봐야 하는가? 하나로 보지 않기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의 성향은 생각보다 닮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작가라고 해서 문학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가? 또한 작품과 작가를 하나로 보기에는 무리수가 있는 작품들 또한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문학을 접하는데 있어서 작가를 알아보는 것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일 뿐, 책을 본인의 기호로 접하고 즐기는 대중들에게 권하기에는 귀찮고 불필요한 행동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우동 한그릇을 보고 따뜻함을 느낀 사람들이 굳이 그 작가의 이면을 봐야 하는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음으로서 당대 러시아 상류층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면 톨스토이에 대한 것은 알던 말던 상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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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정도를 안고 고민했던 생각이었기에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독자로 끝내고 싶다면, 충분히 즐기되 몰입하지 말 것" 정도로 축약되었다. 문학 서평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던가, 평론가라던가, 혹은 비교문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한 독자의 입장으로서 작품은 기호에 의한 소비로 충분하다고 보는 편이다. 어차피 살다 보면 내가 알던 작가의 모르는 면모에 대해서 듣게 될 것이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뿐이다. 싫으면 읽지 않는거고, 좋으면 읽는 거고. 서점에 들러 단순히 책을 사서 보는걸 즐기는 독자에게 작가 반영론적 관점을 적용시키는것은 선넘는 처사다. 그러다가 독서 행위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 외에 '글'을 직업의 한 부분으로 안고 가는 사람이라면(아까 위에서 말한 평론가 등의 사람들) 그때부턴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아는 것이 힘'이 된다고 보는 쪽이다. 후배의 말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았었던 이유는 아마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창작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내가 나중에 쓰게 될 글이 혹여 읽었던 책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도 내가 쓰는 글이 탄탄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왜, 우리는 항상 얘기하지 않는가. 어떤 분야는 배우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학문'의 영역으로 진입할지 말지가 독자의 태도를 만든다. 이것도 선택은 본인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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