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니의 문학리뷰 & 창작 일지
엘리제를 위하여 (2018. 짧은 글) 본문
“엘리제님.”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기에, 나는 이번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될 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태양을 등지고 나를 보고 있는 엘리제의 얼굴은 베일로 가려져있었다. 어떤 표정으로 날 보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종의 무신경함은 아닐까 했다. 맑은 날이었다. 구름은 하늘에서 거칠게 흩뿌려졌다. 순간이 온몸으로 각인된다는 건 따끔거리는 느낌이었다. 좋고 나쁘고는 없었다.
“네. 말씀하세요.”
엘리제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대답했다. 불러세운 건 내가 맞았지만 딱히 꺼낼 말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딱히 중요할 사람은 아니었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했다.
5년만의 재회였다. 서로 보고 간단히 안부를 건네는 데는 어렵지 않았지만, 깊숙한 얘기를 하기엔 내가 어색했다. 게다가 그녀는 언제나 그녀만의 분위기를 풍겼다. 인상깊지만 스쳐지나갈 것만 같은 사람.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사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에 반발심이 생긴건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예닐곱 살 때부터 홀아비 아래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부족함이 없었다. 켈커타의 거상 엔비의 딸이었고,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으며, 아름다웠다. 금발에 붉은 색 드레스가 퍽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자란 환경을 타지 않았는지 손재주가 좋았던 그녀는 아버지 엔비의 곱지 않은 눈치도 신경쓰지 않고 남에게 무언갈 만들어주는 걸 좋아하는 쪽이었다. 열여섯이 되었을 즈음 엔비는 자신의 딸을 상인으로 키우는 걸 포기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날 원망하지 마라. 죽기 전 성 두 채를 지을 만한 재산을 딸에게 미리 줘버린 그의 말이었다고 한다.
미모로 소문이 나있는 거상의 딸과 설명하기도 난처할 정도의 막대한 재산. 귀족은 아니더라도 재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상인 집안이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자제를 틈만 나면 켈커타로 보내 그녀에게 수작질을 하기 일쑤였다. 질투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성생활이 문란할거라느니, 남자를 갈아치울 거라느니 험담을 하고 다녔다.
다만 엘리제는 어디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엔비가 물려준 재산마저 신경 쓰지 않아서 정확히 두 달 만에 성 한 채 반 정도의 값이 켈커타의 사람들에게 나눠졌다. 귀족과 질투 많던 이들이 난처할 차례였다. 되려 욕심이 생긴 몇몇은 그녀에게 따로 찾아가서 더 큰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그 무리들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가 세좀 모자란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켈커타에서 나름 규모가 큰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주 맛있는 건 몰라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가장 큰 가게였다. 두 해 연속으로 흉작이 들었을 때 그녀를 찾아가 부탁하자, 그녀는 나에 대해서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선뜻 돈을 내어주었다. 정말로 쉽게 받아버린 돈이여서 당황스러웠지만 이만큼 쓸만한 기회인 것도 없겠다 싶어 나는 상습범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 아끼지 않았기에 나는 쉬이 사정이 어려워지면 그녀를 찾아가 수습했다. 그녀는 갚으란 소리도 없이 나중에 한번 빵이나 원없이 만들어달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경제개념이 없는 것은 명백했다.
제과점이 호황을 치고, 엘리제의 재산이 이제 거의 다 바닥이 났단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저택으로 향하던 내 발길은 끊겼다. 나는 아침에 구워낸 식빵 하나와 감사 편지를 그녀 편으로 보내면서 천천히 그녀를 잊었다. 인간은 간사했다. 엘리제가 더 이상 부유하다고 말할 수 없는 정도가 되자 그녀의 소식은 켈커타에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랬는데,
“되게 케케묵은 질문 같네요, 그거.”
켈커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거라 생각한 그녀를 바다 건너 있는 대륙의 풀밭에서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더 이상 붉은 빛의 화려한 드레스가 아닌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나를 바로 기억했다. 상습적으로 찾아간 내 행동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 이름도 자신의 아버지랑 같이 엔비여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보내준 빵을 먹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내가 빵을 보내던 날 아침에 이미 집을 정리하고 밖으로 떠나던 때였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뭔가 찝찝하다는 듯한 대답을 듣고 나서 내가 심히 괜한 질문을 한 느낌이 들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뵙게 될 줄도 몰라서…….”
“사람 마주치는 데에 원하는 대로 되는 게 몇이나 된다구요. 상관 안해요.”
“붉은 드레스는 이제 안입으시나 봅니다?”
그녀는 에? 하고선 가만히 있다가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서는 베일을 벗어서 얼굴을 보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은 그늘에 드리워져서 빛나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여전한 미모였다.
“돈도 없는데 그런 걸 왜 입어요. 또 뜯어가려구?”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나도 멋쩍게 웃었다. 뜯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녀를 도와줘야 오히려 맞는 쪽일 것이었다. 제과점은 더 커졌다. 이제 나는 세 개 매장을 돌리고 있는 운영자였기에 두 번 흉작이 난다고 해서 굶어죽을 일은 없는 사람이었다. 엘리제를 만난 이곳은 매장을 직원에게 맡기고 여행차 온 곳이었고, 켈커타의 입소문에 내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을 정도로 난 이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엘리제는 내 말을 기다리는지 날 마주보고 있었다. 입가에 잔웃음기가 남아있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보였다. 나는 그녀가 왠지 아직도 부유한 것 같아 보였다. 지금도 내게 뭔가를 줄 수 있는 사람같이 보이는 건 내 착각일 것일까 싶었다.
“빵 하나, 만들어드릴까요?”
“배부르게 잘 먹고살곤 있는걸요? 괜찮아요.”
“저번에 못 받으셨다고 하니까, 제 매장에서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받으려고 말한 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그냥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엘리제님을 위해서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엔비씨.”
그녀가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뭔갈 받고 싶었던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행복하게 살아요 엔비씨. 빵은, 엔비씨네 가게에서 받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 제가 아는 빵집에서 사는 게 더 빠르고 신선할거에요. 그리고 엔비씨가 제게 주고 싶은거랑, 절 위해서인거랑 어떻게 같나요. 엔비씨를 위해서겠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엔비씨네 빵 그렇게 맛있는 편 아냐.”
나는 다시 한 번 멋쩍게 웃으면서 인정해야했다. 완전한 경제적 안정이 생기고 나서야 나는 내가 빵을 맛있게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부유해지길 더 원한 쪽이었단 걸 알았다. 요즘 들어서 다시 기본기를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앞날은 많이 멀어보였다. 엘리제는 내게 들어가 보라는 인사를 하면서 양산을 폈다. 그녀는 인상깊지만 스쳐지나갈 것만 같은 사람.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돌아가려던 그녀가 고개를 뒤로 하고선 날 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다음에 아주 맛있는 빵 들고 오면 받을게요.”
‘행복하게 살아요’라는 그녀의 말이, 그녀가 행복하단건지 나를 향한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구상 노트
이전에 한 선배와 단편 구상을 하던 도중 나누게 된 말이다. 가족의 장례식을 여는 이유는 가족의 명복을 빌어주려고 하는 것 또한 있지만, 장례식을 열지 않는다면 남에게 욕을 먹을 수 있거나 스스로가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수 있다. 임산부들에게 ‘다른 예비 어머님들도 모두 가입하셨어요’라고 하면서 태아 보험을 권유하면 수락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아이를 위해서 보험을 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가입한 보험을 내가 가입하지 않으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는 대중심리에 기인해서로도 해석 가능하다.
따라서 ‘누군가를 위해’라는 말은 심리적으로 푼다면 상당히 애매한 말이다.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하여 남의 행복을 바라는 것 또한 ‘남이 행복해야 내가 만족하기 때문에’로 귀결되어서, 결국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벌이는 행동이다. 다시 말해 감사한 마음에, 죄송한 마음에, 고마운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에 하는 타인을 향한 행동들은 ‘감사해서’, ‘죄송해서’, ‘고마워서’, ‘미안해서’라는 말 이전에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라는 ‘이기심’이 기반되어 나오는 행동이다.
누가 뭐래건 저 좋을대로 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짤막하게 써보고 싶었다. 주인공(엔비)과 엘리제는 철저히 서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라는 심리를 두고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엘리제에게 상습적으로 찾아가 경제적 지원을 받은 제과점 운영자고, 엘리제는 오랜만에 엔비를 만나고 나서도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엘리제’는 본래 ‘테레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나온다. 따라서 엘리제만큼 가상의 이름에 적합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베토벤도 누군가를 위한 작곡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벌인 작곡이기도 하지 않을까.
(2018년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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