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니의 문학리뷰 & 창작 일지

고양이 (한장소설) (2020) 본문

창작/소설

고양이 (한장소설) (2020)

과니(Gwany) 2021. 1. 22. 15:27

 

101동 경비원이 일을 그만뒀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한다. 극성맞은 주민에게 호들갑에 가까운 핀잔을 맞은 것도 아니었고, 부녀회와 마찰도, 처우의 문제도 아닌 듯했다. 어머니는 쭈그려 앉은 채로 빨래를 밀며 그 소식을 알려주고서는

갈 때가 되어서 갔나보지

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냉담한 반응이었기에 물을 마시다 말고 입을 뗐다. 내가 읽지 못한 경비원의 얼굴을 당신이 읽은 건지도 몰랐다.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떤지 알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기초수급자와 독거노인을 겸한 쪽이었는데, 대부분 깊지는 않아도 선명한 눈그늘과 만성적인 피로 덕분에 다소 날이 서 있는 어투를 가진다. 본인의 성향에 따라 정도는 달라져도 본인의 외로움을 딱히 해소할 만한 관계나 대상이 없으면 심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리고 101동 앞의 경비는 이러한 조건에 어딘가 모호하게 걸쳐져 있었다. 덩치가 커서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고, 항상 어딘가 붕 뜬 느낌이었다. 분리수거장에서 마주쳤던 그의 얼굴은 그리 힘든 사람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게 괜한 오지랖인지도 생각해봐야 했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키가 큰 사람, 보폭은 크지만 걸음이 느린사람, 단지 내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사람 정도가 다였으니까.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나서일까, 분리수거를 할 즈음 아파트 후문 쪽 경비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플라스틱이 쌓여있는 마대자루에 요구르트 통을 던지면서 101동 경비에 대해 묻자

박씨? 사정이 있어서 그만둔다 그랬었죠. 별 일 없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허전한 건 없으세요?

뭐 사람 있다 가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런데 고양이들은 박씨를 찾아다니더라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01호의 박씨가 사라지자 아파트 화단 깊숙한 곳에서 고양이들의 시체가 간간히 보이기 시작했단 소리였다. 서로들 악취가 날 때까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뒤늦게 치워버린다는 소리였다. 여름철이었고, 부패하기 시작하면 눌어붙은 살점들까지 모두 바닥에서 긁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어머니도 그렇고, 경비도 그렇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경비에 대해서 꺼내는 말들이 마치 얼굴만 아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듯이 말하는 느낌이었기에 썩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새벽, 외주 번역 작업을 중간 즈음 진행했다가 담배를 피러 바깥으로 나갔을 때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평소에 화단을 중심으로 잘 돌아다니는 녀석이었는데, 웬일로 재떨이 옆 정자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이었다.

.

고양이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아파트 뒤쪽 편으로 걸어가더니 뒤를 돌아보고선

야옹

하고서 나를 불렀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작업을 더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일은 주말이었기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철쭉이 피어난 화단을 건너서, 어린 라일락 나무 몇 개를 지나치고 도착한 곳은 105동의 아파트 단지 뒤쪽. 바로 위에는 1층의 베란다가 있어서 잘못하면 내가 남의 집을 몰래 보는 것만 같은 난감한 구도였건만

날 보고서 다시 한번 운 고양이는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우악스럽게 달려있는 실외기의 아래로, 부셔진 화분과 제초가 되어있지 않은 풀무더기 사이에서, 흰색 반 팔을 입고서는 쭈그려 잠이 들어있는 박씨를 발견했다.

 

 

 


 

 

고양이랑 인간이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도움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고, 하지만 도움을 받으면 보답하려고 하고. 혼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자기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남을 탓하지 않고, 친근하지만 낯설고, 자주 보지만 보고 싶을 땐 보이지 않는 점들이.

 

짧은 한장소설로 끝냈지만 인물설정을 뮤지컬 배우들이 하는 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생각보다 의의가 있던 작품이었다.

'창작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015)  (10) 2021.01.16
있을지도 모른다 (2015)  (1) 2021.01.14
엘리제를 위하여 (2018. 짧은 글)  (4) 2021.01.0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