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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리뷰/시집 리뷰「시음식(詩吟式)」

신철규와 어린왕자

과니(Gwany) 2020. 9. 3. 06:53

이별이 깊숙히 개입하는 장소에 들어간 인간은 가지고 있는 감정적 세계의 규모가 급격히 축소된다. 이 말이 어렵다면 장례식을 생각하면 되겠다. 누군가 떠나가면 당장의 슬픔이 내일의 할 일을 정지시킨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현상은 심해진다. 자신의 생을 (필연적인 이별을 안고 사는)주변인들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된다. 나의 주변은 언젠가 멀리 떠나갈 것들이고, 그 시기는 예상할 수 없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상 이 원치 않은 이별은 다시금 찾아올 것이다. 그저 가깝거나 먼 거리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슬픔의 공간이 장례식이라면, 신철규 시인은 발을 딛고 있는 세계 자체가 그러한 공간이다.

 

오늘도 누군가 옥상에서 지상으로 몸을 던졌다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이 세계는 지옥이었다

신철규 - '생각의 위로' 중
우리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책을 매일 한 권씩 버렸다

신철규 - '식탁의 기도' 중

 

Toa Heftiba by Unsplash

 

그에게 세계는 아름다운것이 되지 못한다. 시집은 천천히 읽다보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씨부터 시작해서 세월호 아이들의 이미지까지 보인다. 천국과 지옥을 두고 여기는 어디인지 생각하는 화자와 그 와중에 자신은 누구인지 생각하는 화자, 그리고 그러한 혼란들 속에서 스스로를 버티지 못하는 시적 화자가 뒤섞여 있다. 이즈음 되면 눈치채겠지만 그에게 지구는 '연속된 슬픔'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슬픔 그 자체다. 혹여나 읽는 도중에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시집의 중반을 넘어가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지구에 대해 고백한다.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신철규 - '슬픔의 자전' 중

 

신철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시집의 첫 시작이 어린왕자의 모티프인 것도 있으나, 그가 대상을 대하는 감정에서 유사성을 띈다. 그의 화자들은 세계에 일종의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적극적인 저항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떠나보내면서도 눈에 밟힌 것들을 잊지 않으려 하며, 그 슬픔이 너무 크기에 되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는 느낌에 가깝다. 

 

[어린왕자]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스러운 존재가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주저앉아 펑펑 우는 어린왕자의 모습이 없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 신철규 시인은 자신의 지구가 눈물로 가득차있음을 알기에 울지 않는다.

 

비틀어져있는 세계

묵정밭 위에서 누군가 힘들게 운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신철규 - <눈물의 중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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